O -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
돈 안 들면서 재미있는 취미가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으뜸은 글쓰기 아닐까 합니다. 김민식 피디가 최고의 노후 대비는 글쓰기처럼 돈 안 드는 취미를 계발하는 데 있다고 말하는데 공감이 많이 됩니다.[1]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그런 것은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일단 무엇이라도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째로 쓰지 않으면 자기 생각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사고하고 쓴다기보다 쓰면서 사고하는 쪽에 가깝다고 생각하고요.[2] 둘째로 많은 연구 결과에서 밝혀졌듯이 글쓰기는 마음을 안정화하는 데도 탁월합니다. 우울하거나 속상하고 화나고 걱정되는 일이 있을 때 글을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3] 상담자가 내 마음을 받아주듯이 글은 아무말 없이 우리 마음을 담아줍니다.[4]
글을 써야 하는 세 번째 이유가 있다면 앞으로 글쓰기가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5] 정확히 말해 논리적 사고 능력, 특히 귀납적 사고를 통해서 무언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말이 되게 연결하는 창의성이 더욱 중요해진다고 합니다. 기계보다 인간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세 번째 이유는 뭔가 좀 궁색한 느낌이 스스로도 있네요. 글쓰기가 중요하고 내가 어떻게 그 능력을 갖추었다 한들 그게 내 삶에 어떤 영향으로 다가올지 잘 안 떠오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만 창의성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크고 작은 난관을 지혜롭게 통과해 나가는 데 유용한 능력이기도 합니다. 창의성이 좀 안 와닿는다면 인지적 유연성이라고 명명해도 좋겠네요. 글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이리저리 문제 상황을 구체화해 보고 다각도에서 시뮬레이션 해보기도 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얻는 때가 분명 있습니다.[6]
이렇듯 다방면에 도움이 되니 뭐라도 써보는 건 어떨까요.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날마다 메모를 한두 개 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저도 어떻게 보면 여느 직장인처럼 매일 공식적인 문서를 작성하며 밥벌이를 하고 있지만, 글쓰는 건 매번 버겁습니다. 그나마 작년 말부터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서 글쓰기에 대한 부담을 조금 덜어낸 느낌이긴 합니다.
글을 쓰든 메모를 하든 쓰다 보면 조금은 글쓰기 실력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날마다 뭐라도 쓰고 있습니다. 운이 좋다면 약간의 창의성까지 감미한 글쓰기도 가능할 테고요. 혹자는 창의성이 좋은 작업 습관의 결과라고 말하기도 하니까요.[7] 운이 정말 끝내주게 좋다면 언젠가 책도 한 권 내는 날이 있을 테죠. 그런 날이 올까요? 안 오면 뭐 어떻습니까. 쓰는 것이 그 자체로 좋은데요.
뛰어난 사업가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사업을 하면 안 되는 걸까? 중요한 건 '뛰어난 사업가가 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이 사업으로 내가 무엇을 얻을까'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지난주에 생긴 것이 아니라면, 몇 년 된 것이라면,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써야 하는 사람이다. '의미의 우주'에 한 발을 들였고, 그 우주에 자신의 의미를 보태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8]